잃어버린 쌍꺼풀
아침에 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드물 것이다.
물론 부모라면 매일 보는 자식이겠지만 녀석이 항상 새롭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과 함께 그때그때 마다 녀석의 얼굴 분위기가 천태만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지훈이는 전날 수박이라도 먹고 아침까지 늦잠을 잔 날은 어김없이 얼굴이 팅팅 부어서 일어난다.
하지만 제 엄마랑 목욕이라도 갔다 온 다음날 아침은 얼굴이 우유빛 처럼 뽀얀 게, 그 어떤 천사의
얼굴보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다 심하게 앓기라도 할 땐 반쯤 뜬 초췌한 눈으로 바라보는 처량한 얼굴이 나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그리고 어떤 땐 일어나자마자 ‘아빠’ 하고 나의 품에 달싹 안기는가 하면, 잠이 덜 깬 채 일어날
때면 일어나 앉아서도 눈을 감고 비몽사몽간을 헤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 한여름 일요일 아침에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오랫동안 기억될
정겨운 추억으로 남는다.
사건의 발단은 아침에 일어난 지훈이의 한쪽 쌍꺼풀이 없어진 데서 시작되었다.
지훈이는 태어날 때부터 짙은 쌍꺼풀이 져 무척 예뻤는데, 그것은 녀석의 얼굴 이목구비
중에서 눈이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어쨌든 녀석의 한쪽 쌍꺼풀이 없어진 이유는 쌍꺼풀이 있는 자리를 하필이면 모기가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한쪽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올라 자연히 쌍꺼풀이 풀어질 밖에.
이를 처음 발견한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 지훈아, 너 상꺼풀 어디있어? 쌍꺼풀이 없어졌네.”
“쌍꺼풀?”
지훈이는 그 말에 거울로 달려가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어? 쌍꺼풀이 어디갔지?”
“…….”
지훈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얼굴에서 쌍꺼풀이 지워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적잖이 놀라는 것 같았다.
“도둑이 훔쳐갔나? 이상하다, 어젯밤엔 아빠가 문도 꼭 잠그고 도둑이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지키고 있었는데.”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둘러대자 녀석도 덩달아 심각해져서 쌍꺼풀의 행방에
대해 걱정했다.
“지훈아, 잘 생각해봐. 너 쌍꺼풀 어디서 잃어버렸어. 그거 엄마, 아빠가 너한테 딱 하나씩만
준 거라서 잃어버리면 돈 주고도 못 사 큰일났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면 아내가 웃음을 참으며 맞장구를 쳤다.
“지훈아, 잘 생각해봐. 어제 어디서 잃어버렸어?”
분위기가 이쯤 되자 녀석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알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쌍꺼풀, 놀이터에서 잃어버렸어.”
녀석은 어제 오후 내내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았던 것을 기억해내고 틀림없이 거기서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맞아, 어제 너 금표하고 놀면서 그네 타다가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거지?’
지훈이는 대답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쌍꺼풀에 대해 무슨 소중한 장난감을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린
것처럼 초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할 수 없지. 지훈아, 아빠가 오늘 밤에 하나님한테 기도해서 우리 지훈이 쌍꺼풀하나 더 붙여
달라고 부탁할게.”
“그래, 아빠가 부탁하면 하나님이 꼭 들어 줄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제 엄마까지 거들자 녀석의 굳은 얼굴이 조금씩 풀어지는 듯 했다. 모기에 물려 두툼해진 한쪽
눈을 꿈벅이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의 순군무구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그리고 나서 얼마쯤 지났을까.
아내는 아침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했고 나는 방안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거실에 있던 아내가
지훈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 아빠, 방에 지훈이 있어요.?’
설거지 하는 아내와 함께 있는 줄 알고 있던 나는 거실로 나갔다.
지훈이가 없어진 것이다.
날씨가 더워서 문을 열어 놓고 있던 터라 녀석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밖으로 뛰쳐 나온 아내와 나는 녀석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놀이터에 있는 지훈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살박이 아이가 혼자 밖으로 나가 없어졌다는 놀라움과 걱정만큼이나 녀석을 찾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했다.
녀석은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며 서있더니 내가 달려가며 이름을 부르자 엄마,
아빠도 왔느냐는 듯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훈아, 너 여기서 혼자 뭐하니?’
그러자 녀석은 땅바닥을 여기저기 쳐다보며 말했다.
“쌍꺼풀 찾으려고……”
“뭐?”
나와 아내는 어이가 없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상하다, 쌍꺼풀이 어디갔지? 아무리 찾아도 없네……”
나와 아내는 녀석의 양손을 하나씩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말했다.
“지훈아 놀이터가 넓어서 쌍꺼풀 찾기 힘들어.
오늘 자기 전에 기도하고 자면 내일 아침에는 꼭 쌍꺼풀이 붙어 있을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며 안심시켜 주었지만 녀석은 분명히 놀이터에 쌍꺼풀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지 연신 놀이터를 돌아보면 미련을 거두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이 놀이터에 장난감을 놔 두고 오면 나중에 나와 함께 가서 그것을
주워 오는 일이 많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녀석의 조그만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러면서 녀석이 내뱉은 이 말 한 마디가 나와 아내를 또 한번 웃게 만들었다.
“이상하다…… 금표가 주워갔나?”
그날 저녁, 구수한 냉이국 향기가 피어나는 식탁에 둘러않은 자리에는 아내의 기도에 이어
특별히 지훈이가 난생 처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녀석은 두 손을 모아 코 앞에 갖다 대고는 두 눈을 억지로 찡그려 감은 채 기상 천외한 식사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지훈이가……쌍꺼풀을 잃어버렸어요. 지훈이가 놀이터에…… 떨어뜨렸어요……
금표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쌍꺼풀이 없어졌어요…… 쌍꺼풀이 보고 싶어요. 하나님…… 아멘.”
녀석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나는 속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하지만 녀석은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기도를 해내고야 만 것이다.
기도를 마친 지훈이는 하나님에게 쌍꺼풀을 찾아 달라고 기도했다는 안도감으로 활짝 웃었다.
그 날 저녁 아내가 집 앞에 모인 이웃들과 저녁의 더위를 식히며 얘기를 나누던 차에 지훈이가
동네 아줌마 한 사람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가리키며 잃어버린 쌍꺼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민수 아줌마, 지훈이가 쌍꺼풀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민수 엄마가 지훈이를 보면 말했다.
“지훈아, 괜찮아. 그건 모기가 물어서 그렇게 된 거니까 좀 있으면 괜찮아져,”
“모기가 물어서……?”
“그래, 모기가 거길 꽉 물어서 그런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러자 한동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다훈이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낮게 힘주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으응~, 모기가 훔쳐 갔구나.”
“……”
그렇게 해서 녀석은 쌍꺼풀을 훔쳐간 범인이 금표도 아니고, 도둑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
‘모기’였음을 알아낸 것이다.
<끝>